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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하반기 회고

2025 하반기 회고

2024년에 힘들었던 것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2025년에는 건강이슈가 참 많았다. 내가 무언가 잘못했나? 의심이 될 정도로 잔잔한 방해물들이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 이런 모든 것들도 관리할 수 있었던 부분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1월부터 시작된 깁스(리스프랑 인대 부상) > 아킬레스와 힘줄 염증 > 담즙 역류(?) > 임파선염 > 한 달에 걸친 치과치료 > 이유없는 폰 고장 > 봉와직염 > 혈관염. 어쩌면 하늘의 뜻이 있었을지도.

2025년 하반기는 AI와 함께 회고를 쓸까 고민도 되었지만, 내 뇌를 가장 아낌없이 활발하게 써야 할 활동에 간섭을 받게 되는 것 같아, 회고만큼은 지금의 쥐어짜냄(?)방식을 유지하려고 한다.

6-8월

8월에는 이런 글을 썼다 →https://catyjazzy.github.io/posts/back-to-dev-world/. 졸업 직후 소규모 팀에 합류했다. 모든 개발을 맡으면서 제품의 뱡항성, 팀의 문화, 의사결정의 방식을 모두 깊이 있게 고민하면서 일할 수 있었다.

제품의 초기단계에서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하며 개발에 대한 열정과 재미를 되찾을 수 있었다. 2025년 상반기 취준을 하면서 잊었던 현장의 절박함과 생생함이 느껴졌다.

반면,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특정 요소들에서 충돌이 있었다. 이 요소들에 대한 해결의 방향성조차 애매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인가? 내 관성일까?” 또는 “바꾸고 해결해야 하는 팀의 병목인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제로투원을 하는 팀이니까, 아직 문화를 형성해가는 팀이니까- 이런 추상적이고 막연한 근거들을 핑계로 삼아 제쳐두곤 했다. 이런 지점들이 어떠한 부정적인 결과들로 발현될 때는 팀에게 공유했으나 여전히 주체적으로 해결하진 못했다.

9월

9월은 2025년의 하이라이트다. Toss Frontend Accelerator 교육을 받은 한 달이었다 (* 이는 별도의 편으로 따로 다룬다). 이 교육과정은 앞으로 내 개발자 인생, 더 나아가서 내 삶에 대한 큰 사고의 틀까지 바꾼 계기가 되었다.

내가 되고 싶은 개발자가 뭐였더라

Toss Frontend Accelerator 3기(이하 Acc3기)는 사내 토스 멤버의 추천을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나의 강점을 기억해주신 네이버 부스트캠프 시절의 동료 덕분에 기회를 얻었다. 사실 처음엔 도망치고 싶었다. 혼자 모든 제품개발을 하는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수준만큼 준비하지도 못할 것 같아서… 그런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지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후회의 순간들은 이런 완벽의 허상에 갇혀 도망칠 때 시작되었었다. 그냥 한 번 혼난다고(?) 생각하고 지원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지원서의 질문들은 교육과정과 별개로 개발자로서 꾸준히 고민해야 하는 내용들이었다.

생애 첫 라이브코딩 면접을 봤다. 굉장히 창피했다. 아주 단순하고 실무에서 하루에 한 번씩 마주할 법한 요구사항에도 허둥댔다. 이 면접 경험 하나로 각성하게 된 것이 많았다. 내 객관적인 구현 실력, 사고의 과정, 메타인지 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떨어졌다고 마음을 비우고 개발자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묘한 시간을 가졌다. 아래의 생각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죽어있는 뇌를 갖고 개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지 않고 그저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습을 하고 있나?

어떤 걸 고민하고 있으신가요? 그게 왜 중요할까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교육과정 코치님께서 페어코딩 또는 코칭 과정에서 자주 던져주셨던 질문들이 있었다. 정확히 위의 워딩은 아니지만 핵심은 what과 why다.

적어보면 너무나 당연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직접 대답하는 입장으로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깨닫게 된다-생각보다 우리는 이 질문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어렴풋이 느낀 ‘죽어있는 뇌로 개발을 하는 느낌’은 코치님의 워딩으로써 더욱 제대로 표현되었다. “슬롯머신을 당기는 개발” - ex. 디버깅을 할 때, 사고없이 ctrl + z를 통해 오류 발생 이전 단계로 돌려보는 행위.

메타인지의 필요성과 (메타인지에 대한 메타인지 😂)는 개발 전반의 스킬뿐만 아니라 삶의 문제, 일에서의 문제 또한 해결해주었다. Stop하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기 위한 약간의 “필수적인” 쉼표를 의도적으로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에 힘입어 6-8월에 고민하고 있었던 일을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결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2가지 배움이 있었다. 1) ‘주체성’이라고 착각해왔던 나의 방식은 사실 주변 리소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던 부족함이었다. 2) 암묵지를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드러내어 의도적으로 실천하는 것(= 패턴화)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회고를 할 수 있나요?

교육과정 중 주말에 자유롭게 나와 자습을 할 수 있었다. 첫 주는 한 주간의 경험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화이트보드에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공유하기로 했다. 이때 예상치 못하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는데, 바로 회고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칠판에 정리한 모습. (혹시 모를 내용 유출에 대비하여 일부 블러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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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 왜 이러한 형태로 정리했어요?
  • 회고를 시작할 때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 언제부터 이렇게 회고를 하셨나요?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게 이렇게 감탄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건가?

질문에 답을 하다보니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던 것들이 가이드와 같은 형태로 정돈되었다. 보통 회고를 쓸 때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어서 > 기존의 경험을 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고 > 다음 내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점으로 삼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이 목적을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프레임워크를 요구하게 된다.

그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하고 있었지?

23살-24살 즈음부터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중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나면, 늘 그 이면의 나만의 근거에 대한 궁금증이 따랐다. 이러한 글들을 쓴 적이 있다.

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글을 꾸준히 써왔다. 블로그 글 외에도 노션의 문서, 네이버 부스트캠프 교육과정 중 제출한 글들, 다이어리에 직접 쓴 글들 등등… 과거의 나에게 놀랐다(!)

이 모든 것들이 자산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느낀다. 나에게 회고는 다짐이자, 나에 대한 탐구자책, 칭찬, 솔루션이기도 했다. 토스 Acc3기의 동료들 그리고 코치님 덕분에 회고의 방식과 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회고 이후에 Acc3기 디스코드에서 라이브로 회고 강의(?) 및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역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타인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야 내가 모르던 시각이 열리는 것 같다.

10월

10월에는 Acc3기에서 배운 깨달음들을 적용해보는 차원에서 더 신나는 개발을 했다. 물론 신남보다는 다시 관성처럼 변화하기 전의 나로 돌아갈까봐 안간힘을 쓰는 것에 가까웠다.

타이어 타는 냄새를 드디어 맡았어요

동생을 따라 메르세데스의 팬으로 F1에 입문했었다. 10월에 내한 행사가 있어서 아주 당연하게도 동생과 참석했다. 영상으로 볼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특유의 향과 굉음의 설렘이 포인트였다. 너무 빨라서 사진에 잘 담기지도 않고 … 이 정도 거리에서 봤다는 게 믿기지도 않고 … 이 굉장한 감정과 마음이 글에 온전히 담길 리가 없어서 설명하기 싫을 수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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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더 무비에서, 주인공 소니 헤이즈는 경기에 매우 몰입한 나머지 주변이 느리게 지나가고 몸이 날아가는 듯한 순간이 있다고 표현하였다. 영화 소울에서는, 이 몰입과 집중의 순간을 영혼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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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극도의 <몰입감. 집중.="" 도전=""> 등의 이유로 F1을 좋아한다. 그것이 드라이버 개인이 아니라, 팀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F1의 매력이다.

정신없는 졸업스냅

졸업유예를 했기에 신분상으로는 재학생이었지만, 좋은 날씨에 기록하기 위해 미리 졸업스냅을 찍었다. 다리가 다치면서 살이 확 쪘기에… 개인적으로 졸업스냅에 대한 기대나 욕심은 없었다. 그대로 어머니와 함께 찍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준비한 뒤로부터는 설렜다.

결혼식 스드메처럼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작가예약, 장소 / 컨셉 / 소품 고민, 헤어메이크업예약, 학위복 대여, 의상구매 등. 옷을 살 시간도 없어서 원피스도 거의 3-4개는 샀다 😅 이전에 소프트웨어 창업 학회 해커톤을 하면서,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졸업스냅 준비 관련 어플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었는데 이제야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특히 나는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미소의 표정을 못한다. 서서 찍는 것은 목각인형보다 더 뻣뻣한 형태가 되곤 했다. 이 모든 걱정은 작가님의 추진력과 교육(?) 덕분에 해결되었다 ㅋㅋ. 마치 다음 연예인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짧고 빠르게 최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들어가야 하는 스케줄처럼 오더를 내려주셔서 어쩌다보니 마법처럼 홀려서 순조롭게 촬영할 수 있었다. 짐꾼 역할을 해준 남자친구의 리액션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사진을 남겼다. 어머니와 같이 메이크업을 받고 사진을 찍어서 더욱 뿌듯했다. 졸업한 것보다 어쩌면 이게 더 큰 효도였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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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개발자 커뮤니티

Acc3기의 인연이 이어져 개발자 커뮤니티에 처음 발을 들였다. Acc3기 교육과정만큼이나 큰 충격이자 자극이었다. 그동안 커뮤니티 활동은 개발자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아니 이건 큰 손해다! 개발은 서적을 읽고 그것을 적용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맥락과 경험 속에서 쌓인 노하우와 대화들이 오가는 공간은 그 자체로 좋은 교과서였다.

처음 디스코드에 들어갔을 때는 관심있는 스레드와 채널을 읽으면서 3일 내내 새벽 늦게 잠에 들었다. 좋은 팀원에 대한 정의, 학습 방식에 대한 고민, AI 활용에 대한 각자의 방법과 팀별 도입 방식 등등 …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이거다! 하는 재밌는 것들이 가득했다. 동시에 나는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어떻게 녹아들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고 마침 오프라인 밋업 운영진을 모집하고 있어서 바로 뛰어들었다.

그동안 스스로를 대문자E라고 생각해왔으나, 막상 모임에 나가보니 수줍고 낯을 가리는 아기 병아리가 된 느낌이었다 🐥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나보다 연차도 많고 언젠가 동료가 될 수도 있는 개발자들이라고 생각하니 주눅이 들기도 했다. 미래의 면접관들을 만난 느낌.

→ 사실 이건 “자기개방”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기도 하고. 또 앞으로 이런 자리들을 늘려가면서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분들이라서 회의 자체는 매끄럽게 진행되었으나 조금 더 루즈하고 편안한 모임들에 나가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면 런닝이라든가 … 번개 모각작과 같은 .. ㅠ.ㅠ)

11월

영화나 드라마에서 큰 재앙이나 불운한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 행복이 극대화된 장면을 연출한다. 11월은 나에게 아슬아슬하게 행복한, 곧 닥쳐 올 알 수 없는 위기 직전의 고요함과 같았다.

팀의 체계가 잡혀갔다. 그동안 계속 미뤄졌던 제품의 첫 런칭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추상적으로 정돈되지 않았던 기획이 디테일을 포함한 요구사항 문서로 정리되기 시작했고, 그전에 강하게 외쳐오던 칸반보드 도입과 공수계산 루틴이 자리잡았다.

생일 파티도 했다. F1 메르세데스 팀의 유니폼을 얻었다 ㅎ. 평소 사고 싶었던 개발 서적 6권도 얻었다.

어머니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어드렸다. 바로 김동률 콘서트를 갔기 때문이다 ✨ 어머니는 전날밤부터 콘서트장에 도착할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김동률님의 음악을 들었다. 잠실에 가서 재미있게 쇼핑을 하고, 콘서트에 갔다가, 집에 와서 함께 야식으로 치킨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산책 겸 청계천을 따라 걷고 예쁜 브런치 카페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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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이 아프기 전 내 마지막 행복이었다 . . .

위기의 시작

< 1주차 >

  1. 벌레 물린 것처럼 딱딱한 자국이 생겨서 동네 피부과에 방문 → 진정연고 같은 것을 처방 받음
  2. 더 크게 부어서 같은 동네 피부과에 재방문 → 항생제 연고 받음

< 2주차 >

  1. 붓는 것을 넘어서 보라색으로 변하고 영역이 넓어짐.
  2. 미열과 함께 걷는 것까지 불편해짐
  3. 슬슬 무서워져서 미용전문이 아닌 피부과를 꼼꼼히 조사해서 방문 → 세균 감염이라고 진단받고 알약 복용하는 항생제와 연고를 함께 받음
  4. 부은 곳을 누르면 다시 회복이 안될 정도로 염증이 차고, 걸을 때 통증이 극심해짐
  5. 동네 정형외과를 방문 → 봉와직염이라고 진단받고 소염제와 함께 다른 약 처방 받음

< 3주차 >

  1. 약간 낫는 것처럼 영역이 줄어들어 정상 출근함
  2. 다음날 바로 극심한 통증과 열이 동반됨 → 정형외과 재방문 후 바로 입원을 추천하심 😅

이렇게 그날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바로 병동으로 올라갔다. 생전 목발 한 번 써본 적이 없는데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맞으러 가는 기분이 이상했다. 병동 생활도 걱정되었지만 무엇보다 런칭 직전에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어 막막했다.

병원밥이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맛이 없었고, 밤은 너무나 추웠다. 극기훈련을 왔다는 생각으로 마인드 컨드롤을 하고 노트북과 책을 챙겼다. 일주일 동안은 재택근무와 동일하게 회의도 참여하고,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입원한 지 조금 지났을 때 대상포진과 같은 수포를 발견했다. 이때부터 다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1. 파스를 붙였던 곳에 보라색 수포같은 것이 생김.
  2. 정형외과 원장님께서 접촉성 피부염으로 보인다고 하여 넘어감
  3. 수포가 근처 피부까지 퍼짐. 여러 곳에 산발적으로 생김 → 피부과 협진을 통해 접촉성 피부염을 진단받고 약과 연고 처방받음
  4. 저녁마다 수포 부근에 극심한 통증이 시작됨 (살면서 아파서 운 적이 없었는데, 이건 고문에 가까웠다. 뼈와 혈관에 수많은 압정을 꽂은 상태에서 망치로 두들기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한 적이 많아서 이번에도 눈물을 흘리면서도 주먹 물고 참았는데, 병동을 함께 쓰던 이모님께서 고통스러운 모습 보는 게 힘들다고 대신 간호사를 호출해주셨다. 진통제를 맞으면 다음날에 차도를 확인할 수 없을까봐 거부했는데 결국 도저히 못 참겠어서 진통제를 맞았다. 그후로 이상하게 같은 시간대마다 통증이 시작되었고 진통제 없이는 잠을 못 자는 수준에 이르렀다.)
  5. 수포가 난 부분들의 붓기/통증이 심해져서 응급실에 감. 다행히 세브란스 응급실에서 받아주었고, 명확한 원인을 바로 찾지는 못했으나 외래진료를 바로 잡을 수 있었음
  6. 입원한 병원의 내과 선생님께서 항생제 부작용을 의심하셨으나 봉와직염이 완치되지 않아 같은 항생제를 계속 맞았음
  7. 다행히 3일 정도 지나서 봉와직염 완치 판정을 받았고 부모님과 함께 본가로 향함
  8. 발목 통증이 종아리와 팔로 퍼졌음 (발목의 콕콕 찔리는 통증과 다르게 종아리와 팔은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고 .. 자다가 쥐났을 때 알이 올라온 통증이 계속 지속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외래 진료를 보기까지 기간에 남았으나 통증이 심해서 정형외과를 재방문했다. 뼈와 근육에 문제는 전혀 없다고 하시며 류마티스를 의심해보라고 하셨다. 피부에 있는 수포때문에 원인파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물리치료와 같은 다른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9. 세브란스에서 혈관염을 진단받고 치료 시작

봉와직염 완치 후 퇴원해서 외래진료를 받기 전까지 그 사이의 기간동안 겪은 통증은 정말 지금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발목엔 못이 박혀있고, 팔은 혈관이 끊어진 느낌에, 양쪽 종아리에는 알이 올라온 것 같은 그 정신없는 느낌때문에 하루종일 수련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전에는 내 휠체어를 끌고 다니고 매일 고생하는 가족과 남자친구에게 미안하여 밝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는데, 통증이 심하니 나도 무너져 내렸다. 일은 물론 쉬게 되었고 펑펑 우는 날이 많았다.

12월

12월은 짱구밖에 생각이 안 난다. 오랜만에 정말 아무 생각없이 푹 쉬기 위해 노력했다. 쉬는 것도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엔 메신저에 무언가 와있을까, 어떤 일이 터질까봐 불안감에 자꾸 노트북을 열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어설프게 일하지 말고 그냥 짱구나 보라고 하셔서 … 그래서 뜬금없이 짱구 극장판을 몰아서 봤다. 어찌보면 휴식의 상징처럼 마음을 비우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평소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아도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고른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초심을 찾아야 할 땐 탑건을 / 느슨해졌을 땐 빌리 엘리어트를 / 마음이 복잡할 땐 트루먼쇼를 보곤 했다. 그런데 뜬금없는 짱구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먹고 자고 쉬는 그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상징이 되어주었다.

“혈관염”이라는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고 나니, 비슷한 통증이 와도 견딜 수 있었다.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원인을 모른다는 불안감과 통제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오는 고통도 컸던 것 같다. 역시 대학병원은 대학병원임을 깨닫고 … 앞으로 보편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증상이 보이면 냅다 큰 병원부터 가야겠다.

팀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장시간 자리를 비웠음에도 배려해준 덕분에 회복할 수 있었다.

건강을 크게 한 번 잃고 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생활해 온 방식도 돌아보게 되고, 부모님의 희생도 알게 되었다. 아플 때 가장 힘든 건 나의 통증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미안함과 무력감이었다. 내 건강을 챙기는 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세브란스 의료진도 항생제 부작용을 원인으로 꼽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작용이 시작된 상태로 같은 항생제를 맞았으니 고문이 맞았다 😅)

(12월 쉬는 기간 동안 나의 숙원사업이던 졸업한자시험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데이터 정돈을 마쳤다. 1월에 무사히 베타버전을 런칭했다)

26살, 20대 후반이라고?

26살의 나이는 참 묘하다. 주변 지인들의 좋은 소식들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기업에 갔다거나, 원하던 로스쿨에 갔다거나, 그동안 키워온 회사가 전성기를 맞이했다거나.

때로는 조급함이 들기도 했다. 사범대 학생에서 개발자로 방향을 바꾼 뒤로 나의 노력은 언제나 결실을 맺었었다. 네이버 부스트캠프나 Acc3기처럼. 내 회고 글이나 성장의 과정을 보면서 늘 비슷한 피드백을 들었다.

‘당장 지금은 부족해도, 그 누구보다 성장속도가 빠르다.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26살이 되니, 이제 이러한 피드백은 나에게 콤플렉스처럼 다가왔다. 아직도 ‘실력’이 아닌 ‘잠재력’인가? 오랜 시간 동안 잠재력만 있고 실력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내가 보여준 모습들은 허울뿐이지 않을까 - 하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불안감이 커질수록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 난 어떤 부족함 때문에 불안하지 - 그럼 어떤 걸 할 수 있지 - 그걸 어떻게 성취하지 >

그리고 위의 고민들로 도출한 계획을 잘 실천하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올해 들어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성능최적화. 자동화 등 특정 키워드나 특정 방향성을 가진 경험에 꽂히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세요.

이 말이 정말 크게 와닿았다. 취업 준비를 하다보면, 성공했다고 공개된 소수의 사례를 보며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그것을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여기게 되는 것 같다. XX를 가려면, ~한 이력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기술스택은 다뤄봤어야 하고. 이렇게 특정 케이스들의 텍스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방향성을 잃고 그저 하나하나를 끝냈다는 것에 그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팀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찾게 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책들을 찾아보며, 효과성과 효율성을 평가함과 동시에 필요한 학습까지 할 수 있다.

반수생 시절, 개념도 끝내지 못한 상태로 시험을 볼까봐 시간의 부족함에 쫓길 때 일기에 ‘시작은 더 늦게 했지만 난 그만큼 더 밀도있게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이 될거라고’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발을 늦게 시작했지만 더 밀도 있고 행복하게 내 커리어를 쌓아가면 된다.

2026년은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기록하며, 깨어있는 상태로 성장하는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